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1) : 기신대운(忌神大運)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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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1) : 기신대운(忌神大運)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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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1) : 기신대운(忌神大運) 진입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죽을때 후회하는 25가지

저자: 오츠 슈이치(의사) / 21세기북스 / 2011.07.01.

 

 

저자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호스피스 전문의다.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을 공부하다 하다 보면 고전에 소개되는 많은 인물과의 만남이 있는데 그 명식의 주인은 이미 죽음을 경험한 분들의 명조이다. 그리고 현대에 출판된 서적도 세월이 많이 흘렀다면 소개된 유명 인물이나 혹은 그 책의 출판 시점에 사주 감명을 받았던 사람들도 현재는 세월이 흘러서 어느덧 나이가 지긋한 분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 명조들의 주인도 사주 감명을 청했던 당시에는 자신의 일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삶의 방법을 찾으려 애쓴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사업은 잘 될까요?”, “결혼은 언제 할까요?”, “이 사람은 저에게 잘해줄 까요?”, “승진은 할 수 있나요?” 등의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미 책 속에 등장한 인물들은 고인이거나 혹은 황혼의 끝에서 삶을 정리하는 나이가 되어있다.

 

 

 

명리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삶을 잘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찾는 하나의 수단이거나 피흉취길(避凶就吉)의 용도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측면 중에 하나는 이 명리학을 만나게 되고 또 배우기 시작한다면 그 명리학을 만난 시점 이전 삶에 대하여 되짚어 본다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그 되짚어 보게 되는 계기는 자신의 용신(用神)의 글자나 혹은 어느 간지(干支)의 세운이 좋았는지에 대하여 파악하고 “미래의 언제쯤 운이 좋겠다”라는 것을 찾기 위함이 전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면서 본인 삶의 족적을 스스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탐구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자기성찰의 시간이 되거나 자기 객관화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명리학 공부의 큰 장점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큰 장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공부를 지속하다 보면 자신에게 가장 큰 시련이 언제일 것이다. 혹은 “이 시기는 불운(不運)이 가득하다”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예측해보게 된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하게 만드는 명리학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죽음을 마주 보게 된 사람들이 삶의 끝에서 후회하게 된 내용들이 담겨 있는 이야기이다. 사람들 중에는 인생을 살면서 “나의 삶에는 후회라는 단어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부류의 사람들 이야기는 “전진은 있어도 후퇴는 없다”, “인생 무엇이 있겠어! 즐기면 되는 것이지”, “나는 욜로(YOLO) 족이다”, “못 먹어도 고“ 등으로 자신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공통점이 있다. 어찌 보면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이니 이러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저항을 명리학적으로 보면 죽음과 삶의 관계가 음양(陰陽)의 관계이고, 이 관계는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충(沖)의 관계로 비유해 볼 수도 있겠다.

 

 

 

사주팔자의 형충회합(刑沖會合)에서 말하는 충(沖)은 어떠한 간지(干支)나 글자의 대척점이 만나는 현상을 설명한 것이고 그 충(沖)에서는 부딪침이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원인과 결과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살았으니 죽어야 하고, 웃었으니 슬퍼야 하고, 좋았으니 힘들어야 하는 것과 같다. 반대도 가능하다. 이 충(沖)은 나빴으니 좋아야 하고, 괴로웠으니 기뻐야 하는 것과도 같다.

 

충(沖)을 만나게 되면 큰 변화를 직면한다. 그렇게 되면서 그 충(沖)으로부터 오는 현상이 부정적이던 긍정적이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무엇인가 수정하고 변경하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성공했던 방식을 후회하던 혹은 실패를 거듭한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하던 후회가 온다. 그리고 그 후회의 끝에서 다시금 새로운 생명력이 태동한다.

 

 

 

이 책에서는 죽음이라는 것과 직면하게 되었을 때 하게 되는 후회들 중에 사랑, 일, 겸손, 나쁜 짓, 감정, 결혼, 유산, 건강, 신의 가르침 등 여러 가지 파트로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서 아래의 내용은 친절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후회하는 내용이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독단 때문에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어요. 마음을 조금만 열었어도 새로운 가치관이나 업무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바보같이 그런 기회를 잡을 줄 몰랐죠. 건강할 때는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정말 바보였지요.”

 

“저는 지금까지 친절도 선행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는 선생님을 보니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네요. 정말 대단하세요”

 

환자 B는 이렇게 후회했다.

창문 밖으로 향한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눈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성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쉽게 배반도 했고요.

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불행했을 거예요

 

저는 오직 저만 알고 제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위 내용에서 독단, 경청, 성공, 배반, 반성, 선행, 친절, 눈물, 이기주의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사주를 공부하다 보면 자신에게 좋은 대운 보는 법이나 세운 보는 법에 대하여 공부하게 된다. 그 운(運)을 우리는 호운(好運)이나 길운(吉運)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언제 오는지 어느 시점이 자신의 절정기인지에 대하여 판단하고 예측해 본다.

 

그러한 자신의 절정기가 빨리 왔다는 것은 빠른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리막이 시작하기 직전에 많은 사람들이 주변으로부터의 인정이나 자신의 이룩한 업적 등에 매몰되고 지나친 자신감 그리고 과도하게 스스로를 고평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서 독선적인 면이나 아집 혹은 교만 등이 점층적으로 강해지면서 내리막이라는 운을 열어갈 준비를 시작한다.

 

 

 

이 내리막이 시작하는 시점에 해야 할 것이 있다.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친절이 될 수도 있고 배려가 될 수도 있다. 운이 좋을 때도 해야 하는 것이지만 운이 나빠지기 시작할 때는 꼭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반강제적으로 친절해야 하고 반강제적으로 베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교운기(交運期)나 혹은 형충(刑沖)의 시점에서 호운에 자신이 영위하고 있던 것들의 일부분이나 혹은 전부를 걷어가는 작용을 맞닥뜨리게 된다. 반대로 흉운의 끝에 오는 교운기나 형충은 긍정적인 것을 위해서 발현되는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강기에 직면한 내용에 관한 것이니 반대의 내용은 생략하겠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이 반강제적인 친절이 필요한 시점에 베풀거나 친절하지 못하다면 생기는 현상이 있다. 그리고 그 현상에 닥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저 배신당했어요.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럴 수 있나요?”, “제가 사기당했어요”, “믿었던 아랫사람인데 등에 칼을 꼽다니 정말 너무 합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많이 억울합니다.”, “이런 갑작스러운 사고가 왜 저한테만 잃어날까요?”, “저는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요” 등의 다양한 내용이 나오는 시점이다. 이러한 것이 운이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반대로 나쁜 운이 장기간 지속한 상태로 왔다면 위와 같은 상황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배신당할 사람도 없이 외로웠으며, 사기당할 돈도 없이 가난했으며, 아랫사람을 둘 처지가 아니니 등에 칼 맞지도 못했을 것이고, 어디 여행을 갈 시간도 없으니 사고도 나지 않았으며, 매일매일 억울하고 있기에 한 번 더 억울하다고 특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불운(不運)이 시작되면서 느끼는 사건이나 감정은 호운일 때 받았던 혜택을 온전하게 나 혼자서 이룩한 것이라는 착각이 불러오는 현상 중에 일부분이다. 그 불운의 시작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모든 업적과 성취와 혜택에는 자신의 노력도 분명히 있었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의 희생, 그리고 선천적으로 부여된 능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운의 무게중심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실려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나의 노력 이외의 것에 친절하고 베풀었어야 하는 부분을 망각한 세월이 있던 것이다.

 

 

 

그럼 책의 다음 내용을 보도록 하겠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자신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도리어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로 따뜻함이나 위로를 전하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똑같은 말이라도 표정, 목소리, 미묘한 뉘앙스 혹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상대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말기 환자들에게 완화치료를 실천하는 나도 위로의 말이나 따뜻한 말을 건네야 할 상황이 오면 머뭇거릴 때가 있다. 말기 환자들에게는 그러한 말이 친절하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불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 공허한 말보다 침묵이 상대방의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위로와 격려는 역효과를 낳는다.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들어주기만 해서도 안 된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또한 단순히 공감만으로 부족할 때도 있다. 실제 병원에서 생활하다 보면 의사인 나에게는 환자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정황에 따라 가장 나은 최선책을 제시해야 할 때도 있다. 다정다감한 말보다 똑 부러진 태도가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처럼 누군가에게 친절을 실천한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길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풀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여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타인을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거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도 먹고 먹히는 동물의 법칙에서 예외이기 어렵다. 더욱이 법과 이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선과 악이 불분명해진다면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리라는 건 안 보고도 알 수 있다. 약자는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친절과는 정반대인 멸시와 모욕을 당하고, 강자는 세상을 부리며 모두가 자신의 발아래 놓여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서면 약자든 강자든 모두 약하고 작은 존재가 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지위나 부에 상관없이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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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과 친절을 베풀지 않으면 장담하건대 당신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인생에서 백전백승을 외쳐도 죽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게 인간이다. 그렇지만 생의 마지막을 패배가 아닌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이 마냥 두렵지마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얄팍한 처세가 아니라 타인에게 진심으로 너그러웠던 사람은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울 수 있다. 삶에서 진정으로 베풂을 실천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주에서 말하는 기신대운(忌神大運) 진입 시점 다시말하면 운이 내리막을 향해 출발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접어들게 되면 몇 가지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교만, 아집, 우월감, 자아도취, 권위의식, 쾌락, 중독 등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자신의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하나둘씩 시기, 질투, 범죄, 비난, 절망, 열등감, 질책, 억압, 배신감, 타락, 불안, 폭력, 질병, 사건사고, 소송 등으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이러한 하강기의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 끝에 반성과 후회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가 바로 운기의 진짜 바닥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몇 년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소 10년, 길게는 30년 지속된다. 최악은 60년까지도 지속된다. 그것이 대운의 주기이다. 10년은 한 번의 대운을 의미하고 30년은 대운에서 말하는 한 계절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새로운 상승기가 시작할 때 비로소 겸손, 친절, 나눔, 사랑, 감사, 봉사, 건강, 올바른 판단력, 바른 가치관 등의 잊고 지냈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밑거름이 되어서 열정과 창조와 도전정신, 자신감, 추진력 등이 성장하게 된다.

 

 

그렇기에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환경은 불가항력적이라고 해도 스스로 내면적으로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배양하고 조금씩이라도 실천해 본다면 사주에서 말하는 불운도 자신에게 큰 교훈이나 배움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음양(陰陽)이라고 말하는 이원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 외부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자신의 내부적인 변화를 조금이라도 발생시켜서 외부의 부정적 에너지와 내부의 긍정적 에너지를 중화시켜 에너지를 재생산해야 하는 것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운이 나빠질 때일수록 실천하기는 힘들겠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타인에게 친절해 보려고 한다면 하강기의 흉(凶)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끝으로 "며칠 뒤에 내가 죽는다면?”이라고 자문해 보고 후회할 것 같은 것 중에 현재 자신의 역량으로 실천 가능한 것 하나를 버린다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하나 채워질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 역시 음양의 이치이다. 비워진 공간이 있어야 채울 공간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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