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목일주(갑목일간) : 사주 미월 갑목(未月 甲木)(1) - 잡기격(雜氣格)
- 여름생 삼하(三夏) 갑목 -
<책 속의 사주>
명조 : 001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자일주 남자(건명, 남명)
: 갑진생(용띠) 신미월 갑자일 신미시 (미시생)
: 갑진년주, 신미월주, 갑자일주, 신미시주
출처-궁통보감강해(窮通寶鑑講解), 이을로, 동학사, 2007.12.13
출처-조화원약평주(造化元鑰評注), 정지호, 삼한, 2003.07.16
◆ 책의 내용 요약 : 궁통보감
- 고전 명조이다.
- 兩干不雜(양간부잡) 專用丁火(전용정화) 一生富貴(일생부귀)
- 양간부잡격(兩干不雜格)으로 일지 자(子)수를 써서 평생 부귀하였다. 자(子)수는 일간을 유력하게 하고, 미(未)토를 윤택하게 하여 신(辛)금을 생한다. 사주가 중화되고 운이 서북(西北)으로 달려 운이 용신을 도왔다. (※ 원문의 전용정(丁)화는 내용상 맞지 않아 전용자(子)수로 정정하였다.)
◆ 책의 내용 요약 : 조화원약평주
- 이 사주는 양간부잡격(兩干不雜格)이다. 정(丁)화가 용신이니 부귀해도 아내와 자식이 머무르기 어렵다. 만일 정묘(丁卯)시라면 정(丁)화가 출간하여 아들 형제들 둔다. 그러나 가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 이 사주의 장점은 갑(甲)목이 자(子)수에 이르러 관인상생하니 윤토생목(潤土生木)하여 정(丁)화가 용신이 된다.
명조 : 002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인일주 남자(건명, 남명)
: 무인생(범띠) 기미월 갑인일 을해시 (해시생)
: 무인년주, 기미월주, 갑인일주, 을해시주
출처-자평진전평주(子平眞詮評註), 심효첨, 서락오, 역자 박영창, 청학, 1997.02.20
◆ 책의 내용 요약
- 고전 명조로 합비(合肥) 이국균의 사주이다. 원항성 총통의 후원으로 중화민국 초기에 광동 순무사를 지내기도 했다.
- 년간 무(戊)토와 일간 갑(甲)목의 천을귀인이 모두 미(未)토에 있다. 일주 갑(甲)목이 신강하니 능히 재(財)를 감당할 수 있다. 월령의 지장간 본기 기(己)토가 천간에 투출하여 용신이 되면서 사주에 금(金)이 없고 인(寅)목과 미(未)토의 지장간에 화(火)가 감추어져 있으니 식상생재의 격국이 성격 되어 그 순수함이 극에 이르렀다.
- 년월은 조상을 뜻하니 좋은 가문에서 출생했고 천을귀인 미(未)토가 직접 용신이 되니 본인이 귀인의 도움을 받게 된다.
명조 : 003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자일주 남자(건명, 남명)
: 신묘생(토끼띠) 을미월 갑자일 경오시 (오시생)
: 신묘년주, 을미월주, 갑자일주, 경오시주
출처-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 임철초, 역자 홍보환, 서이원, 2011.03.25
◆ 책의 내용 요약
- 고전 명조이다.
- 갑자 일원이 미(未)월 오(午)시에 태어났다. 바로 여름의 나무가 물을 만나는 것으로 상관에 인수가 있는 것이다. 기쁜 것은 묘(卯)목이 미(未)토를 극하여 자(子)수가 미(未)토의 극을 받지 않아 족히 오(午)화를 충거 할 수 있는 것이다.
- 병(病)이 있는데 약(藥)을 얻은 것이니 탁한 것을 제거하고 청한 것만 남게 되었다. 천간의 갑을(甲乙), 경신(庚辛)이 각각 문호(門戶)를 세우고 있으니 정편관이 혼잡된 것이라고 논하면 안 된다.
- 정편관 금(金)은 인수 수(水)를 자양(滋養)하는 희신이다. 더욱 묘한 것은 운이 동북(東北) 수목(水木)으로 흘러가니 체용이 마땅하여 일생동안 벼슬길이 평탄하고 순조로웠다.
명조 : 004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오일주 남자(건명, 남명)
: 경인생(범띠) 계미월 갑오일 갑술시 (술시생)
: 경인년주, 계미월주, 갑오일주, 갑술시주
출처-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 임철초, 역자 홍보환, 서이원, 2011.03.25
◆ 책의 내용 요약
- 고전 명조이다.
- 목화(木火) 상관에 인수격이다. 경(庚)금이 바짝 붙어 인수인 계(癸)수를 생하니 순수하고 좋다. 글을 읽으면 잊지 않고 외웠는데 애석한 것은 경(庚)금과 계(癸)수를 지지가 실어주지 않은 것이다.
- 더욱 꺼리는 것은 술(戌)시로 화(火)국을 이루니 비단 금수(金水)만 마르고 손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 화(火)가 목(木)을 태워버리는 것으로 일주의 원기가 설진(洩盡)된 것이다.
- 어려서는 허약하였는데 폐와 신(腎)이 다 이지러진 때문이다. 병술(丙戌) 대운에 이르러 수(水)를 말리고 금(金)을 극하니 요절하였다.
명조 : 005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자일주 남자(건명, 남명)
: 을사생(뱀띠) 계미월 갑자일 무진시 (진시생)
: 을사년주, 계미월주, 갑자일주, 무진시주
출처-궁통보감강해(窮通寶鑑講解), 이을로, 동학사, 2007.12.13
출처-조화원약평주(造化元鑰評注), 정지호, 삼한, 2003.07.16
◆ 책의 내용 요약 : 궁통보감
- 고전 명조이다.
- 支成水局(지성수국) 困了丁火(곤료정화) 雖主富貴(수주부귀) 乏子(핍자)
- 용신이 정(丁)화가 기력이 없어 파괴되므로 부귀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미(未)토 중 정(丁)화는 월간 계(癸)수에게 개두되었고, 지지는 자진(子辰) 수(水)국이 되어 용신이 역할을 할 수 없었다.
◆ 책의 내용 요약 : 조화원약평주
- 위 사주는 지지에 수(水)국을 이루어 정(丁)화가 곤(困)하다. 따라서 부귀해도 자식을 두기 어렵다. 인왕(印旺)하여 상관생재하고, 정(丁)화는 투출하지 않았는데 계(癸)수가 출간했으니, 미(未)월 갑(甲)목이나 수(水)가 성(盛)하여 화(火)가 쇠(衰)한다.
명조 : 006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인일주 남자(건명, 남명)
: 무인생(범띠) 기미월 갑인일 계유시 (유시생)
: 무인년주, 기미월주, 갑인일주, 계유시주
출처-실전 사주비결 통변편, 김갑진, 보고사, 2017.03.06
◆ 책의 내용 요약
- 고전 명조이다.
- 기미(己未) 정재는 지지 미인(未寅)에 통근하고 월주를 차지하니 왕하여 재왕한 것이고, 일주 갑목은 좌하에 득록하고 년지 인(寅)목의 부조가 있고 계(癸)수의 생을 받으니 역시 왕하여 신왕한 것이다. 이를 신재양정(身財兩停)이라 하는 것이다. 사주가 이리되면 대재(大財)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 미(未)토월은 화(火)기가 퇴기하는 시점이니 화(火)기가 모두 물러난 것이 아니라 계(癸)수도 요긴하다. 그렇기에 시간의 계(癸)수를 용(用)한다. 신왕재왕하나 무기(戊己)토 재성이 투출하여 재성도 왕한 가운데 계(癸)수가 있어 중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 운로가 신유술해자축(申酉戌亥子丑)으로 희신과 용신운이니 대부격(大富格)을 이루었다.
※ 신재양정(身財兩停)
: 일주와 재가 모두 왕한 것을 말한다. 사주상 재관(財官)은 중요하게 참조하는 육신이나, 재다(財多)하면 신약하여 사주가 귀격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재왕한 사주는 반드시 일주가 왕함을 요하는데, 이리되면 대재(大財)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신재양정이라 한다.
명조 : 007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인일주 남자(건명, 남명)
: 갑오생(말띠) 신미월 갑인일 을해시 (해시생)
: 갑오년주, 신미월주, 갑인일주, 을해시주
출처-명리요강(命理要綱), 박재완, 역문관, 1974.07.01
출처-명리강론(命理講論), 신수훈, 서지원, 2005.10.10
◆ 책의 내용 요약 : 명리요강
- 1894년생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전 국회의원이었던 신익희 선생님의 명조이다.
- 하염(夏炎)에 해(亥)수가 해열하겠는데 인해(寅亥)합목, 해미(亥未) 회합목(會合木)으로 용신 신(辛)금이 고립이다. 초년 임신(壬申), 계(癸)수의 금수(金水)대운은 지식이 출중하고 문필이 유여하며 언변도 좋은 시절을 보냈다. 유(酉)대운 기미(己未)년도 길할 듯 하나 금화목(金火木)이 상극하여 삼일운동으로 중국 상해에 망명하게 되었다. 이후 동지를 규합하여 임시정부 수립에 동조하였다.
- 해(亥)대운에 윤국으로 요직을 역임하고 해방 이후 자(子)대운에 국회의장을 지냈다. 정(丁)대운 병신(丙申)년에 대통령 입후보로 호남행 열차에서 거세하였으니 이때는 용신 신(辛)금이 합극되었기 때문이다. 애국 포부를 펴지 못했으니 온 겨레와 함께 천추의 한을 남겼다.
◆ 책의 내용 요약 : 명리강론
- 육갑추건격(六甲趨乾格)이면서 진상관용인격도 되는 명조이다. 정축(丁丑)대운 병신(丙申)년에 귀천하게 되었다.
※ 유갑추건격(六甲趨乾格)
- 갑일주가 해(亥)시에 출생하면 육갑추건격(六甲趨乾格)이 성립된다. 갑(甲)은 만물의 비롯이요. 해(亥)는 천문이며 갑의 생(生)궁이 되으로 성립이 된다. 운세가 재관 운이면 관재나 재앙이 따르지만 인수국을 이루고 있으면 오히려 재관이 있어야 고귀해진다.
- 사(巳)운이 들어 해(亥)를 충거하면 격(格)이 깨지므로 흉이 따른다.
※ 신익희(申翼熙)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발췌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여구(汝耉)이며 호는 해공(海公)이다. 이명으로는 임방호(壬邦乎)를 사용했다. 경기도 광주 출생. 조선시대 때의 판서를 지낸 신단(申壇)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서 내무차장·외무차장 등을 역임했고, 귀국 후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19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 사서삼경을 비롯한 한학을 익혔고, 1908년 관립한성외국어학교(官立漢城外國語學校)를 졸업한 뒤 일본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에 유학하였다. 유학 시절 『학지광』(學之光)의 발간을 주도하였다. 1913년 와세다대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17년부터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의 전신인 보성법률고등학교에서 비교헌법 등의 강의를 맡았다. 1918년 미국대통령 윌슨(Wilson,W.)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됨과 더불어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만주·북경·상해 등지를 드나들면서 해외독립운동원과의 연락을 맡아보고, 안으로는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운동의 방법을 토의하여 3·1운동의 도화선을 당기는 데 일역을 담당하였다.
만세시위에 가담했던 그는 1919년 3월 다시 상해로 떠나 그로부터 26년간의 망명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상해에서 일본유학생친목단체인 유일학회친목회(留日學會親睦會)를 조직하기도 했다. 상해에 있는 동안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초대 대의원과 초대 내무차관을 지냈으며, 그 뒤 내무총장·법무총장·문교부장·외무부장 등을 맡았고, 국무원 비서실장과 의정원 부의장을 겸임하였다. 그는 독립운동이 처음에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시작되더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군사행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임시정부에 있으면서도, 정부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할 뿐 실력은 저항군에 있다는 믿음 아래,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국 청년들에 의한 군대조직을 시도해 보고, 당시 상승기에 있던 중국 혁명군과 연결하여 한중 합작에 의한 군사행동의 실현을 추진해 보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광복 이후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이 편성되자 신익희는 인공 내각의 체신부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12월 임정요인의 한 명으로 귀국한 그는 곧바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부회장을 맡았으며, 국민대학 학장과 자유신문사 사장직도 맡았다. 당시 신익희는 귀국 후, 김구 등 임시정부 계통과는 노선을 달리하여 정치공작대·정치위원회 등을 조직하여 이승만과 접촉하였다. 그 뒤 이승만(李承晩)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1947년에는 지청천(池靑天)의 대동청년단과 합작해 대한국민당을 결성하고 대표최고위원이 되었으며, 1950년 한국민주당과 합당, 개편된 민주국민당의 위원장으로 뽑혔다. 그동안 그는 3선 국회의장으로 정치적 비중을 더해갔으며, 권력의 연장을 위하여 사사오입 개헌까지 자행한 이승만에게 민심이 등을 돌리자, 1955년 장면(張勉)·조병옥(趙炳玉) 등과 민주당(民主黨)을 창당하였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다.
1956년 5월 2일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그의 유세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 그의 인기를 실증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 뒤인 5월 5일 호남지방에서의 유세를 위하여 전주로 가던 중 기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에게는 추모 표로서 185만여 표가 던져졌으며, 5월 23일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서울 우이동에 안장되었다.
상훈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명조 : 008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신일주 남자(건명, 남명)
: 신사생(뱀띠) 을미월 갑신일 기사시 (사시생)
: 신사년주, 을미월주, 갑신일주, 기사시주
출처-사주실록(四柱實祿), 류래웅, 태을, 2015.07.15
◆ 책의 내용 요약
- 1941년생으로 대기업 상무까지 지냈던 사주이다.
- 월지 사령이 기(己)토라 정재격이다. 부모의 자리에 정재와 천을귀인(天乙貴人)이 있으니 초년이 유복하여 명문가 출신으로 유학까지 다녀왔다.
- 대기업에서 근무하였으며 임진(壬辰)대운 정사(丁巳)년에 정(丁)화 상관과 일지 사신(巳申) 삼형살이 되면서 사건으로 퇴직하였다.
- 유학운이 있는 사람은 인신사해(寅申巳亥)가 여러 개 있거나 편인(偏印)이 있는 사람이 많이 가게 된다.
명조 : 009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술일주 여자(곤명, 여명)
: 임진생(용띠) 정미월 갑술일 임신시 (신시생)
: 임진년주, 정미월주, 갑술일주, 임신시주
출처-실전사주(實戰四柱). 김서경, 시와 에세이, 2012.07.25
◆ 책의 내용 요약
- 1952년생 사주이다.
- 갑목일주가 미(未)월에 출생하여 실시하고 미(未)중 정(丁)화가 월상에 투출하여 상관격이다. 또한 지지에 진미술(辰未戌) 토(土)와 편관 경(庚)금이 있으니 재(財)와 살(殺)이 태왕이다. 다행히 시상에 임(壬)수가 신(申)중 임(壬)수에 근을 하여 갑목일주를 생하니 살인상생으로 수(水) 인성이 용신이며 목(木) 비견겁이 희신이다.
- 여명인데 초년부터 대운이 호운으로 흘러 모든 일들이 순탄하게 잘 풀렸으며 37세 계묘(癸卯)대운부터 수억금을 벌었고 임(壬)대운에는 사업을 확장하다 손해가 있었지만 인(寅)목 대운에 사업이 다시 번창하여 잘 사는 사주이다.
명조 : 010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자일주 여자(곤명, 여명)
: 신사생(배띠) 을미월 갑자일 경오시 (오시생)
: 신사년주, 을미월주, 갑자일주, 경오시주
출처-사주용신 및 통변론(四柱容神 通變論), 유경진, 역림관, 2011.03.18
◆ 책의 내용 요약
- 1941년생으로 귀부인 사주이다.
- 위 명조는 관살혼잡이나 을신충(乙辛沖)으로 거관유살(去官留殺)하고, 관(官)이 희신이니 부군이 한때 내각구성요원이었다. 차명을 감명할 당시 당황했던 것은 일지와 시지가 자오충(子午沖)인데 부부가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였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지지가 사오미(巳午未) 남방(南方) 화(火)국이 되어 있기에 방합이 되어 있어 구충(救沖)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 지지에 사오미(巳午未)이니 조열하고 갑목일주가 신약하니 조후상 자(子)수가 용신이고 금(金)이 희신이다.
- 무술(戊戌)대운에 용신이 니색(泥塞)되니 모상(母喪)을 당하였다. 자(子) 대운 병자(丙子)년에 부군이 내무부장관이 되었으니 이는 용신 자(子)수를 도우는 자(子)운이고, 원국의 관살혼잡에서 거관유살하여 격(格)이 한층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병자(丙子)년에는 병신합수(丙辛合水)가 용신을 또 한 번 도운 연고이다.
- 향후 축(丑)토 대운 술(戌)년에 축술미(丑戌未) 삼형(三刑)으로 인한 관재구설을 조심해야 하며, 인(寅)대운 신(申)년에 인사신(寅巳申) 삼형이 성국 될 때이다. 이때도 주의해야 한다.
- 위 명조는 감명 당시 고급 커피전문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이는 수(水)가 용신인 까닭이다.
2020/07/31 - 갑목일주(갑목일간) : 사주 미월 갑목(未月 甲木)(2) - 월지 천을귀인
갑목일주(갑목일간) : 사주 미월 갑목(未月 甲木)(2) - 월지 천을귀인
갑목일주(갑목일간) : 사주 미월 갑목(未月 甲木)(2) - 월지 천을귀인 - 여름생 삼하(三夏) 갑목 - <책 속의 사주> 명조 : 011 ◆ 갑목일간(갑목일주) 미월갑목(未月甲木) 갑신일주 남자(건명, 남명) : �
findwisdombaysix.tistory.com
§. 위 명식의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시면 출처에 표시된 도서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고인이 되신 분들과 역업을 떠나신 분들 및 현재까지 활발하게 저술활동이나 감명 활동을 이어 가고 계신 수많은 명리학의 스승님 및 선배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후학들이 더욱 깊이 있고 진지하게 삶을 관찰하고 명리학에 다가갈 수 있게 귀중한 시간을 들여 소중한 책을 출간해주신 점 또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공인이 아닌 위치에 계시면서 개인 명조를 책 속에 출간할 수 있도록 해주신 많은 분들께도 함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